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우제츠 절멸수용소 (문단 편집) == 폐쇄 ==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던 나치 입장에서 증거물인 절멸수용소는 되도록 빨리 없애야 했다. 라인하르트 절멸수용소들은 엄청난 속도로 폴란드 유대인들을 학살하고 있었기 때문에 1943년 중순이 되면 폴란드에서의 '''절멸'''이 어느 정도 '''완료'''되어 있었고 나치는 라인하르트 계획을 점진적으로 종료하기로 한다. 이에 따라 1943년 봄부터 가장 먼저 지어졌던 베우제츠를 먼저 폐쇄하기로 했고 약 4~5개월에 걸쳐 수용소 각 건물들을 완전히 해체했다. 그리고 나치군이 카틴 학살의 현장을 발견한 직후였기 때문에, 그동안 땅에 매장했던 시신을 모두 꺼내어 소각했다.[* 매장으로는 학살을 은폐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시체를 소각했기 때문에 일대는 연기로 가득했으며 주변 민가의 창문에는 인간의 지방질이 들러붙었다고 한다. SS는 수용소 해체를 마친 300명의 존더코만도들을 독일의 노동수용소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속인 뒤 소비보르 절멸수용소로 보내 처형했다.[* 존더코만도들은 당연히 자신이 어떻게 될 지 알았다. 그들은 소비보르에 도착하자 마자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다녔고 소비보르의 경비병들에게 모두 사살당했다.] 수용소가 해체된 자리에는 농가가 세워졌고 이곳에 우크라이나인 SS 한 명을 가족과 함께 상주하게 했다. 이 방식은 트레블링카와 소비보르 수용소가 해체된 뒤에도 사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